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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사이로] 다시 단골가게를 갖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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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사이로] 다시 단골가게를 갖고싶다
  • 성태숙 시민기자((구로파랑새나눔터 지역아동센터장)
  • 승인 2024.06.28 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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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와 경기침체로 온 나라가 난리다. 특히 자영업의 침체가 정말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 재료비, 인건비, 임대료 등등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데, 매출은 코로나 때보다 못한 편이어서 견딜 도리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지역아동센터에 종사한 후 처음으로 단골을 삼았던 구로시장의 과일가게도 올 초 폐업을 했다. 단골이 된 지는 2~3년에 불과하다. 명절에 센터를 이용하는 아동들에게 과일을 조금 지원하고 싶어서 알아본 일이 계기가 되었다. 작은 과일 상자를 구매하면서 원하는 날 배달을 해달라, 또 가능하면 보자기 등으로 그럴싸하게 포장을 해달라, 이것저것 귀찮은 청을 많이 드렸는데 그 모든 걸 흔쾌히 들어주셨다. 

심지어 지역아동센터가 아동복지시설이라는 것을 알고 덤으로 사과나 배를 선물로 주셔서 아동들과 고맙고 미안한 마음으로 나누어 먹기도 하였다.

그렇게 서로의 신뢰가 쌓인 후에는 과일 하나는 걱정 없이 구매할 수 있어 참으로 좋았다. 적절한 물건값에 언제나 양질의 과일을 아동들에게 제공할 수 있어 걱정을 많이 덜 수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영업을 하시니 거의 아무 때나 부탁을 할 수도 있었고, 보조금이 조금 늦게 지급되는 때에는 외상도 가능할 만큼 서로 믿는 사이가 되었다. 또한 현재 과일 시세나 품질을 고려하여 적정한 과일을 구매할 수 있도록 조언까지 해주셔서 운영에도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올 초 배달을 와서는 갑자기 "다음 주부터 가게가 문을 닫게 되었다. 아쉽지만 더 이상 못 뵐 것 같은데 그동안 감사했다"며, 주문한 과일과 함께 선물로 사과 한 상자를 주고 가셨다. 뜻밖의 소식에 아쉬움과 감사함과 애석함을 제대로 전하지도 못한 채 그저 망연자실 이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곤 지금까지 그 단골 가게를 대체할 만한 다른 가게를 찾지 못했다. 아무도 그렇게 조금 구매하는 과일을 배달까지 해주며 팔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인건비가 어떤 지경인데, 그런 손해나는 장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대접을 받고 보니 옛날이 더 그립다. "차라리 안 팔고 만다."는 말에 예전 단골 가게의 고마움이 더 절절해지기도 한다. 경기침체와 자영업의 쇠퇴란 거대 담론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우리 삶의 모세혈관에 해당하는 인프라가 무너지고 이웃했던 세심한 관계들이 사라져서, 어느 틈에 우리 삶에 원치 않는 커다란 구멍이 생기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더욱 서글퍼졌다. 

이런 일을 막으려면 정치가 힘을 내야 하는데, 한숨과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희망은 있을까?" 울적한 생각에 잠시 정신이 없었던 모양이다. 분명 물품을 구매하고 장부를 적어 놓았는데, 왠지 금액이 맞지 않는다. 찬찬히 다시 들여다보니 소고기값이 틀렸다. 장부에는 고기 무게를 달아서 나온 금액을 그대로 정확하게 적어 놓았는데, 카드로 계산할 때 가게에서 임의대로 끝자리 몇십 원을 빼주셨던 모양이다. 공룡 같은 큰 업체에서 정가대로만 물건을 사다 시장에서 이런 서비스를 받으니 새삼 정겹다. 

구로시장의 이런 가게들을 살리는데 일조하고 싶다. 다시 단골 가게를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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