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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칼럼] 서열정리 필요한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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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칼럼] 서열정리 필요한 대한민국
  • 하승수 변호사
  • 승인 2023.11.06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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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두 개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두 문장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모든 공직자들은 주권자인 국민 아래에 있고, 국민의 감시와 통제를 받으며, 국민에게 설명하고 보고할 책무가 있다고 봐야 한다. 

요즘 대통령이든 지방자치단체장이든 '국민(주민)과 소통'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을 보는데, 사실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다. 주권자가 내는 세금으로 월급받는 공직자는 '국민과 소통'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보고'해야 하는 것이 맞다. 

소위 말하는 권력기관들도 마찬가지이다. 국민들에게 세금을 어떻게 썼는지를 설명하고 보고하는 것은 최소한의 의무이다. 그런데 그런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서, 국민위에 군림하려는 행태를 보이고 있는 기관들이 있다. 

검찰이 대표적이다. 이들이 얼마나 오만불손하냐 하면,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보고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국회조차도 무시해 왔다. 국회는 국민들을 대리해서 세금사용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인데, 국회의 자료요구조차도 무시해 왔던 것이다. 

검찰의 이런 행태는 필자가 원고가 되어 제기한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을 통해서 깨졌다. 시민단체들과 독립언론을 대표해서 필자가 원고가 되어 제기한 소송은 3년 5개월이 걸렸지만, 결국 필자의 승소로 끝났다. 

그래서 지난 6월 23일 필자는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에서 1만 6천쪽이 넘는 자료를 받아냈다. 그리고 이제는 전국 검찰청의 예산집행 자료가 공개되고 있다. 지금까지 공개된 검찰 특수활동비, 업무추진비 집행 서류들은 뉴스타파 홈페이지를 통해서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개되어 있다. 

소송을 하는 필자에게 많은 사람들이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고 물어 봤다. 당연히 '권력기관부터 투명해져야 다른 공공기관들도 투명해진다'는 것을 첫 번째 이유로 댄다. 그리고 검찰이 지금까지 가져온 특권의식을 깨고, 검찰을 '보통의 행정기관'으로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는 얘기도 한다. 

또한 주권자와 권력기관 간의 '서열정리'를 하는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일 때도 있다. 이번에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에 가서 자료를 받아오면서, 일부러 검찰이 압수수색을 할 때 쓰는 '파란색 박스'를 들고 갔었는데, 그 이유도 바로 일종의 '서열정리'를 하려는 것이었다. 검찰이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검찰을 통제하는 것이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고 한 퍼포먼스였다. 

당시에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뉴스타파 기자들이 대검찰청에 들어가서 파란색 압수수색 박스를 들고 나오는 것이 꽤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서열정리'가 되는 것같지는 않다. 

공개된 자료를 통해서 검찰이 그동안 예산을 잘못 써온 행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데도, 검찰은 국민들에게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기밀수사에 써야 하는 특수활동비를 공기청정기 렌탈비나 기념사진비용으로 사용한 부분에 대해서만 예산을 환수했을 뿐이다. 

그러나 2017년 8월 이전에 사용한 특수활동비 집행자료를 불법으로 폐기했고, 그 이후에도 2억원 가까운 특수활동비 사용에 대해 현금수령증도 없는 것이 대검찰청의 모습이다. 

전국의 일선검찰청에서 명절 떡값, 연말 떡값, 부서별 나눠먹기, 비수사부서 지급, 기밀수사와 관련없는 격려금 지급 등 온갖 행태들이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도 검찰조직은 국민들에게 사과조차 하지 않으니, '서열정리'는 앞으로 더 진행되어야 할 것같다. 

다른 기관들을 감사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이 사용한 특수활동비ㆍ업무추진비 집행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감사원도 '서열정리'가 필요한 기관이다. 

중앙의 권력기관만이 문제가 아니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중에서도 주민 위에 군림하려는 행태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정신차리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조금은 힘들고 피곤하더라도 주권자들이 해야 할 역할이 있다. 직접 감시하고 비판하는 활동을 해도 좋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서명운동이나 촛불, 집회 등에 참여하는 것도 좋다. 제대로 활동하는 시민단체와 언론을 후원하고 지지하는 것도 힘이 된다.
 중요한 것은 주권자가 주권자로서의 자부심을 잃지 않고,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해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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