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바람이 몰아치던 지난 9일, 7~8명의 주부들이 그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면서 아침부터 분주하다.
이날은 구로5동 롯데아파트 부녀회가 처음 선보이는 녹색나눔장터가 열리는 날. 옷가지들은 기본이고, 신발, 스카프가 알록달록한 표정으로 새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맛 보장 가격 보장 한다는 참기름과 들기름, 달걀도 장터에 자리를 잡고, 부침개, 오뎅, 떡꼬치도 줄기차게 따뜻한 김을 내 뿜는다. 차가운 가을 막바지, 무채색 아파트를 따뜻한 온기로 채워넣는다.
"애기 엄마. 오랜만이네, 어묵 국물 마시고 가." 이현순(59) 부회장이 건네는 인사 한마디에 갑자기 뚝 떨어진 수은주에 발걸음이 빨라진 주민들도 잠시 멈추고 따뜻한 어묵 국물을 후후 불어가며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물건을 파는 것보다 주민들 얼굴도 보고, 어르신들 안부도 묻게 되고, 오가는 아이들도 안전한지 살피는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지난 10월 중순, 구청 앞 광장서 열린 합동 나눔장터 참여가 자극이 돼, 아파트 첫 나눔장터를 열었다는 부녀회. '우리 하자!' 하면 바로 실천에 옮길 수 있을 정도로 평소 의기투합이 잘된다며 황경자(51) 부녀회장은 싱글벙글이다.
"우리 부녀회는 아파트 우체부 같은 역할이죠. 낮에 주민들이 원하는 것을 잘 들었다가 입주자대표회의에 전달하기도 하고, 입주자대표회의서 결정한 내용을 주민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하는 일도 우리가 하는 일이랍니다."
아파트 살림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부녀회원들이 '우리 아파트가 좋은 이유'에 대해 입을 열었다. "아파트 장터 수익금을 매년 적립해 봄가을로 야유회를 떠나는데, 보통 관광버스 3대가 움직여요. 이번 10월에는 동학사를 다녀왔지요." 수익금을 주민들에게 돌려준다는 취지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어린 시절 소풍처럼 설레고 기다려지는 연중행사가 돼버렸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잘 모르고 살기도 하는 요즘, 이처럼 이웃간의 끈끈한 정이 '콸콸' 넘쳐나기 때문일까. 1999년 첫 입주 때 이사와 10년 넘게 살고 있는 회원들이 적지 않다.
조미영(45) 감사도 그 중 한명. "살기 바쁘죠. 하지만 누군가는 나서야 일이 되잖아요. 짬짬이 시간 내면 생각보다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내가 작은 역할이라도 해서 우리 아파트가 좋아진다면 더 열심히 해야죠."
이 멋진 부녀회원들은 몰아치는 강풍마저도 따뜻한 햇살로 바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