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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지명 '아홉노인설'유래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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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지명 '아홉노인설'유래 진실은?
  • 황희준
  • 승인 2009.02.26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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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구로구 지명을 상징하는 아홉노인상. 구로구 지명 유래로 알려진 아홉노인설이 구청 공무원들이 만든 이야기라는 주장이 제기돼 눈길을 끌고 있다. 지방자치제가 자리를 잡아감에 따라 지명 유래, 역사 등 우리 지역에 대한 향토사 연구가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공무원들이 만든 것" VS "옛날부터 전해오던 것"
향토사학자 김정진 씨 "구로역사 아는 게 더 중요"


구로구 지명 유래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진 아홉 노인이 장수해 구로로 불리게 됐다는 아홉 노인설이 공무원들이 만든 이야기라는 주장이 제기돼 눈길을 끌고 있다. 이같은 주장이 사실일 경우 그동안 오랜 역사성을 토대로 전해내려 오는 유래로 막연히 믿고 있던 주민이나 학생들에게는 '가짜 유래'라는 적잖은 실망감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구로구청 홍보과 등에서 근무한 바 있는 공무원출신 A 씨는 최근 본지에 아홉노인설은 영등포구로부터 분구되면서 구로구의 유래에 대해 찾는 과정에서 구청 공무원들이 지명 九老(구로)의 한자 뜻을 살려 만들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1980년대에 영등포구에서 구로구가 분구하면서 대표동인 구로동의 명칭을 따 구로구가 됐다. 당시 구로동이 가장 컸고, 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도 구로공단으로 불리는 등 구로라는 명칭이 지역을 대표할 수 있어 구로구로 구의 이름이 정해졌다"며 "영등포구에서 분구되면서 자연스럽게 구로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한자 뜻풀이를 해 아홉노인이 장수했다는 이야기가 구청에서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자 뜻풀이를 한 것이고 나쁜 의도로 만든 것도 아니어서 문제제기 없이 자연스럽게 구로구의 유래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증을 거친 것은 아니며, 공무원 사회에서는 상당히 알려진 이야기"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구로구청 디지털홍보과 고병득 팀장은 "아홉 노인설을 공무원들이 만들어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일축했다. "80년대 후반에 공직생활을 시작했는데 그 때 지역주민들로부터 아홉노인설에 대해서 들은 바 있다"며 "지역 주민들 안에서 전설로 내려온 이야기를 구로구의 지명 유래로 채택한 것이지 인위적으로 만든 것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설화를 고증하지 않는 것처럼 아홉노인설도 전해내려오는 설인데 이것을 고증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아홉노인설이 구청에서 만들어졌다는 주장에 대해 일축했다.

 60년대 초 구로구로 이사 와 살고 있다는 50대 주민 서모 씨도 어렸을 때 아홉노인설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며 구로구가 영등포구에서 분구한 후 구청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주장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다.


"현 구로의 역사는 구로(을)의 역사"
향토사학자 김정진 씨 지적, 구정백서 구로(갑)역사 제외

 이같은 논란에 대해 구로갑 지역(개봉동, 고척동, 오류동, 온수동, 천왕동, 궁동, 항동)의 향토사를 정리한 '향토사수탄'을 펴낸 향토사학자 김정진 씨는 지명유래와 관련된 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구로의 역사를 바로 아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구로의 유래가 크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설이라는 것이 정확한 것도 아니고 아홉노인이 장수했다는 것이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가 중요시해야할 것은 우리가 사는 구로에 대한 역사이다. 지금 구청에서 발간되는 구정백서에 보면 제일 처음에 나오는 구로 연혁도 잘못돼 있다"고 일침을 놓았다.

 김 씨는 "구로지역이 고구려때 잉벌노현에 속했고 통일신라시대 곡양현으로 바뀌고 고려시대 금주에서 시흥으로 바뀌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구로(을) 지역에 해당하는 역사"라고 지적했다.

 역사적으로 구로(갑) 지역은 고구려시대에는 주부토에 속했으며, 통일신라시대에는 장제군, 고려시대에는 수주, 안남도호부, 계양도호부, 부평부 등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구로구에서 펴낸 '구정백서'에는 구로(갑)의 역사는 쏙 빠져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부분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 김씨 주장의 요체다.

 김씨는 "요즘 지자체에서 문화를 많이 이야기하는데 행사중심으로 가는 것 같아 아쉽다"며 "진정 중요한 것은 지역의 역사를 정확히 알고 전파하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과거의 역사를 현재에 맞게 살려내는 것인데 그러한 모습을 찾기 어려워 아쉽다"는 것이다.



구덩이, 골짜기 등에서 지명 유래된 설도 있어

 한편 문헌 등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구로구의 지명 유래에는 아홉노인이 장수했다는 설 외에도 다양한 설이 있다.

 우선 아홉 노인과 관련된 것이지만 다소 내용이 다른 유래가 있다. 먼 옛날 구루지라는 마을에 아홉 명의 노인이 살았는데, 마을의 지대가 낮아 매년 홍수가 들어 마을 주민들이 높은 지대로 피난을 가곤 했다고 한다. 그러던 가운데 어느 해 큰 홍수가 나 모두 피난을 가게 되는데 아홉 노인은 끝까지 피난하지 않고 마을을 지켰다고 해서 구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다.

 또 다른 설로 구로는 예전에 안양천과 도림천이 만나 늪지가 형성된 곳이라고 해서 구덩이라는 뜻의 '구레'라고 불려지다가, 오늘의 '구로'로 잘못 전해지게 된 것이라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

 이와 비슷하게 지형의 모습을 반영해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도 있다. 구로의 본래 지명은 우리말 '갈'에서 나왔다는 것. '갈'에서 파생된 '가라, 굴, 골, 고르' 등은 강이나 골짜기, 갈린 곳 등을 가리키는 고어의 한 형태인데, 구로라는 이름은 한자어가 아닌 순수한 우리 고어의 변형이라는 이야기다.

 지방자치제가 뿌리를 내려가면서 점차 지역의 전통과 역사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어 '구로'라는 지명유래를 둘러싼 진실과 정확한 지역의 역사 등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사에 대한 관심은 앞으로도 더욱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 이 기사는 2009년 2월 23일자 289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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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로 2022-03-08 14:57:15
구로구 개명하자 낙후된 이미지와 구로라는 명칭도 너무 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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