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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구청장실앞 ‘천왕동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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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구청장실앞 ‘천왕동 사람들’
  • 공지애
  • 승인 2008.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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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천왕동할머니들의 구청 ‘출퇴근’
구로구청 3층 구청장실 앞에는 천왕동 주민 10여 명이 자리를 펴고 앉아있다.

“천왕동 교도소 이전 결사반대!”를 주장하는 이들은 적어도 40~50년 이상은 천왕동에서 뿌리를 내리며 살아온 주민들이다. 5년 동안 매주 월요일이면 구청 앞에 나와 시위를 했지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자 아예 구청 안으로 들어와 상주하게 되었다.

공무원과 함께 출근해 퇴근할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점심은 김밥으로 때운다. 날이 추워지니 건물 복도로 들어오는 찬바람이 여간 매서운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그토록 천왕동을 지키고 싶어 하는지, 그들의 삶과 꿈과 한이 가득한 천왕동에서 쌓아온 희로애락을 들어 보았다.

“영등포에서 천왕동으로 시집오면서 살았으니까 50년 됐지. 와서 5남매를 낳았는데, 막내가 4살 때 남편이 먼저 세상을 뜨셨어. 홀시어머니에 5남매의 가장이 되어서 30년을 넘게 일했어. 아이고, 고생 많았지. 그렇게 어리던 막내가 이제 36살이 됐어. 일손 놓은 지 몇 년 안 돼.이 제 좀 마음 놓고 이웃들과 재미지게 살아보려고 했는데 이런 일이 생겼네.”
시집와 안 해본 일이 없다는 김정숙씨(69, 가명)의 이야기다.

육·해·공군 특수부대가 근처에 있어 발전이 안 되었고, 그 다음엔 그린벨트로 묶여 발전이 안 됐다고. “시골에서 42년 전에 처음 이사 와서 얼마 전까지 집 한 번 제대로 못 고치고 살아왔어요. 그린벨트에 묶여서 지붕이 뜯어져 비가 새도 동사무소에 신청하지 않으면 마음대로 보수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래도 정이 많이 들었죠. 천왕동은 우리 나이또래가 살기 좋은 곳이에요. 경치 좋지, 공기 좋지, 풀냄새, 꽃향기, 나무내음, 새소리... 눈만 뜨면 그 좋은 거 다 보고 듣고 들이마시고 사는데...”

홍난표씨(75)는 문을 안 잠그고 다닐 만큼 이웃 간의 정과 신뢰가 돈독하다고 말했다. 119 구급차라도 들어오면 어느 집 누가 아픈지 걱정이 되어 맨발로 뛰어 나올 만큼 속속들이 터놓고 지낼 정도다.

40여 년 전, 한명숙씨(70)는 난생처음 천왕동에 초가집을 샀다. 그러나 이사 오던 해에 그린벨트에 묶여 집수리를 대대적으로 해서 새집처럼 살겠다는 부푼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비가 콸콸 새고, 노래기가 끓어도 구청에 신고를 해야 고칠 수 있었지요. 비가 와서 화장실이 다 떠내려가도 구청사람들이 못 짓게 했으니까. 못도 못 박고 살았어요. 고쳐 놓으면 와서 때려 부수고 했죠.”

30년 동안 참고 살다 10년 전에 집을 고쳐지었고, 살만 하니 집 내놓으란다며 한 씨는 보상금으로는 어디 가서 집 한 채 살 수도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나 보상금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천왕동에 그냥 살게 해주거나 , 이주단지를 마련해달라”는 것이다. 이제 어디 가서 또 사람을 사귀겠느냐, 천왕동 이웃들과는 누구 집에 숟가락 몇 개인지도 다 아는 사이이니 이들과 떨어져 살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담겨있다.

“어지간한 친척보다 동네 사람들이 더 가까워요. 네것 내것이 없으니까.”

김정숙씨는 오류동까지 학교를 다니는 자녀 둘을 자전거에 태워 데리고 다니던 때가 엊그제 같다고 추억을 떠올리며 이야기했다.

“오류동까지 가는 버스가 딱 한 대 있는데 늘 등하교시간에는 사람들이 가득 찼으니까.”

명절이면 돼지를 잡고, 가을엔 시루떡을 쪄 온 동네 사람들이 나눠 먹기도 했다. 여름이면 소쿠리 가득 상추를 뜯어와 다 같이 모여 밥을 비벼 먹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잔칫상이 되었다. 김장도 날짜가 겹치지 않게 돌아가면서 품앗이를 했고, 김장 김치 한 접시씩만 얻어와도 항아리가 가득할 정도로 서로 돕고, 인심 좋은 마을이었다.

논에서 흘러나오는 새우 잡아다가 김장 담고, 개울가에서 빨래하며 웃음꽃을 피웠다. 샘물은 늘 흘러나와 마를 날이 없고, 물 좋기로 소문나 물 떠가는 사람들도 많다. 서울에 남은 마지막 청정지역 천왕동에는 봄이면 온갖 꽃들이 피고 가을이면 단풍이 곱게 물든다. 천왕동사람들의 마음에도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이웃과 함께 하고픈 소박한 꿈이 곱게 물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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