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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이야기 61]고척동 장자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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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이야기 61]고척동 장자질리
  • 김윤영
  • 승인 2007.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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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부자가 살았던데서 유래
▲ 영등포교도소가 들어서기 전 이곳은 큰 부자가 살았다고 해서 장자질리라 불렸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는 고척동, 10년 후에는 어떤 이름으로 불리울까?

구로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빽빽한 단독주택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고층 아파트들로 변해 있고 더 이상 논과 들과 산이 있던 수십년전의 구로는 상상이 가질 않는다. 고척동 역시 마찬가지. 대규모 공장이나 소규모 가내 철공업소들이 있던 자리엔 아파트단지와 세련된 음식점들이 줄을 잇는데 이어 고척동운동장부지 야구장 건설계획 등 개발 소식으로 고척동의 10년 뒤 모습은 가늠하기 어렵다.

1960년대 영등포교도소가 들어서기 전 고척동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가는골, 고좌리, 능골, 장터골, 헐리개뚝, 쪽다리 등 고척동의 옛 모습을 간직한 지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척동의 모습은 지금과는 사뭇 다르다.

그 중에서도 장자질리. 큰 부자를 점잖게 이르는 말인 장자[長者]의 뜻을 담고 있는 곳이 영등포교도소가 들어서 있는 고척동 100번지 일대다.

언제부터 사용되던 지명인지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이 인근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 의하면 영등포 교도소가 들어서던 1960년대 이전부터 1990년대까지도 이 지명이 사용됐다고 한다.

얼마나 큰 부자가 살았기에 지명이름의 유래가 됐을까?

장자질리라는 지명과 함께 이 부자에 대한 얘기는 전해지는 바가 많지 않지만 갖가지 설이 존재한다.

첫 번째 설은 고척동 일대가 인근 지역인 경기도 부천·안양·강화 사람들이 서울지역 사람들과 안양천을 경계로 하여 생필품 및 농산물을 교환하던 곳으로 외부와의 무역으로 큰 부자가 된 상인이 살았다는 설이다.

또 다른 설은 고척동 뿐 아니라 영등포 시장, 용산, 시흥, 부천 등 상가와 공장, 빌딩 등 50억대 자산을 가진 알부자가 고척동 이 마을에서 공장을 운영했다는 얘기도 있다.

인근에서 오래 거주했다는 한승태(68, 고척동)씨에 따르면 “큰 부자가 살았다고 하는데 소문일 뿐 정확하지 않아 고척동에 오래 산 토박이 가운데서도 장자질리라는 지명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며 “본래 이 인근은 척박하고 수해로 가난한 동네인데 이 곳에 살았던 부자처럼 고척동이 부자 동네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지명 이름이 붙여졌던 것 같다”고 나름대로의 풀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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