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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이야기 60]가리봉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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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이야기 60]가리봉시장
  • 김윤영기자
  • 승인 2007.07.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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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한 장으로 사라져가는 곳
▲ 7,80년대 구로공단 여공들이 자주 찾던 가리봉 시장의 분식골목.

하루 14시간 / 손발이 퉁퉁 붓도록 / 유명브랜드 비싼 옷을 만들어도 / 고급오디오 조립을 해도 / 우리 몫은 없어, / 우리 손으로 만들고도 엄두도 못내 / 가리봉 시장으로 몰려와 / 하청공장에서 막 뽑아낸 싸구려 상품을 / 눈부시게 구경하며 / 이번 달엔 큰맘 먹고 물색 원피스나 / 한 벌 사야겠다고 다짐을 한다


박노해시인의 시집 <노동의 새벽>중 ‘가리봉시장’ 중


과거의 영광이란 추억만 가득 품고 소외되어버린 곳. 그 곳이 바로 구로에서 유일하게 70~90년대 옛 가리봉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1976년경 개설된 가리봉시장이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가리봉시장 골목은 그 옛날 다닥다닥 붙은 좁은 방과 심야만화방이 즐비했던 곳이다.

구로공단 직공들이 일을 마치고 술 한잔으로 시름을 털어놓던 곳, 고향에 봉급 다 부치고 가리봉 시장을 돌며 싸구려 상품으로 유행을 쫓던 곳, 집 나와 오갈 데 없는 청소년들이 밤늦게까지 시간을 때우던 심야만화방이 있던 곳, 공단 노동자들이 기습 가두시위를 벌이던 곳… 그 곳이 바로 가리봉 시장이다.

“고층의 건물들로 채워져 어릴 적 가리봉동의 모습이 남아있는 곳은 가리봉 시장 주변뿐이다. 비닐조각에 흙먼지 풀풀 날리던 잿빛의 가리봉동 기억이 많지만 한편으로는 중학교 때 친구들과 가리봉시장의 분식집 골목을 찾아 떡볶이 한 접시 시켜놓고 배불리 먹던 때가 기억에 난다.”

가리봉 시장의 한 식당에서 만난 박성태(47, 금천구 가산동)씨가 30여 년 전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을 기억하며 한마디 전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식당 주인(50)도 “공단이 있던 시절에는 여공들이 분식들 먹으러 많이 찾곤 했는데”라며 한마디 거든다.

여공들이 자주 찾던 가리봉시장의 분식 골목은 지금 빈 건물들로 을씨년스럽게 변하고 군데 군데 무너진 모습이다. 또 중국동포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중국어 간판으로 된 중국가게들이 날로 늘어나, 이국적인 분위기까지 감돈다.

현재 남아있는 가리봉 시장의 모습도 이제는 추억의 한 장으로만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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