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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이야기 58]온수골 능안과 장승박이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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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이야기 58]온수골 능안과 장승박이 마을
  • 김윤영기자
  • 승인 2007.06.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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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 있던 곳으로. 석관 토기 발굴도

조선 영조 때부터 이 일대에서 더운 물이 나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온수(溫水). 구로구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한 온수동은 동쪽으로는 궁동과 접하고 남쪽으로는 경인국도의 중앙선이 되어 오류동과 만나고 서남쪽 귀퉁이는 경인로를 지나 남쪽 부분이 항동과 닿아 있다. 서쪽은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과 북쪽은 성공동의 까치울과 접하고 있다.

외부에서는 온수동이 온천이 나오던 곳으로만 알고 있지만 온수동에 오래 거주한 주민들은 온수동에 왕릉이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왕릉이 있던 골짜기 안쪽이라고 하여 이름 붙여진 능안은 현 온수공단 한국콘비어(구 영등포기계공단 서울스텐) 뒤쪽에서 온천 약수터 골짜기 일대를 가리키는 지명으로 춘성군 5세손인 진주유씨 일가와 함께 선영(先塋)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한다. 때문에 일제시대인 1920년경에 진주 유씨 선영묘 사초시 석관과 토기가 발굴되었다고 한다.

입향조 이양 공의 10대손으로 온수동 토박이인 이명호(83) 선생에 따르면 “선친말씀으로는 총독부 지시로 석곽과 토기 등이 발굴됐었는데 좋은 토기는 총독부로 송달되었고 나머지 보잘 것 없는 토기들은 당시 인부들이 나눠 가졌다고 들었다”고 전한다.

또 다른 설로는 고려 때 호족이 정착해 살면서 능이 생겼기 때문에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곳이 신라 말 고려 초기에는 중앙통치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자치지구 또는 호족 통치지역이 되었던 곳이어서 강력한 호족의 무덤을 왕릉이라고 일컬었던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한편 이 능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장승이 세워져 있어 이 인근이 장승박이 마을로도 불렸다. 능안 쪽으로 가는 길목에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장승이 세워져 있었으며 이곳에서 북쪽 갈림길(온수골 약수터 쪽)에는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이라는 장승이 천하대장군과 얼마간의 거리를 두고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을 온수골 장승박이 마을이라고 불렸으며 두 장승이 떡 버티고 있어 마을의 평안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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