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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이야기 46]열녀(烈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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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이야기 46]열녀(烈女)
  • 김윤영기자
  • 승인 2007.03.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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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벅지 살 베어낸 열녀
▲ 사진은 파주 남평문씨의 열녀문. 구로지역에도 조선시대에 열녀문이 2개나 세워졌지만 지금은 역사 속 뒷켠으로 사라지고 흔적도 없다.
유교의 중요한 덕목가운데 하나가 아내가 남편을 잘 섬겨야 한다는 열(烈).

옛 문헌에 나타난 열녀로는 평강공주, 도미의 아내 등이 있다.

지금은 흔적도 없지만 구로에도 이같은 열녀를 기리기 위한 열녀문이 세워졌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조선시대 구로리(현재의 구로5동일대)에 살았던 열녀 2명의 이야기가 그것.

조선시대 제24대 헌종시절, 구로리에 살고 있던 어명규의 처 이씨가 그 주인공중 한명이다. 남편이 창질이 나 백약이 무효하자 사람고기를 쓰면 효험이 있다는 말을 들은 부인 이씨가 몰래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남편에게 구워먹였다고. 이후 남편인 어명규의 병이 한결 나아졌고, 헌종7년에 부인 이씨의 이같은 살신성인의 정신을 높이 평가해 마을에 정문을 세웠다고 전해져 오고 있다.

이에 앞서 조선 제23대 왕인 순조32년에는 학생 장태석의 처가 남편이 죽자 그 뒤를 따랐다고 해 조정에서 역시 구로리에 홍살문 즉 정문을 세웠다고 한다.

지금은 당시 구로리로 불렸던 구로5동 일대 어디에도 열녀문의 흔적이나 열녀문 속 여인의 이름이 남아있지 않다. 단지 이름 없는 000의 처 00씨로만 기억될 뿐이다.

남녀평등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현대인들에게는 ‘이런 일로 열녀문을 세웠단 말이야?’라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일지 모르지만 또 다른 구로의 옛 모습으로 기록되고 있다.

◇ 열녀문 =조선시대에는 효행과 여성의 절개를 중시하는 정책의 일환으로 나라 곳곳에 열녀문이 세워졌다. 흔히 홍살문(紅箭門)이란 충신, 효자, 열녀들을 표창하여 임금이 그 집이나 마을 앞 등에 세우도록 했다. 특히 열녀에게는 열녀문을 세워 주는데 이를 정문(旌門)이라고 한다. 정문에는 각종 세금을 면제해 주는 혜택도 동시에 내려졌다고.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때부터 시작해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적지 않은 홍살문이 건립되었다. 특히 성리학적 이념을 바탕으로 하는 조선왕조에서 효행과 여성의 절개를 중시하는 정책의 일환으로 전국적으로 상당수 세워졌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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