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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이야기 7]노숭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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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이야기 7]노숭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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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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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 청렴한 고위관료...천왕동서 600년 후손이 관리

천왕역에서 6640번 시내버스를 타고 광성수지 앞에서 내리면 삼각산 줄기 중 동쪽으로 향해 뻗쳐있는 산등성이 자락에 노숭이란 인물의 묘가 있다.

노숭은 고려말 1337년(고려 제27대 왕 충숙왕 복위 6년)부터 1414년(조선 3대 왕 태종 14년)에 활동했던 문신으로 지금의 총리에 해당하는 검교우의정(검교는 고려·조선 시대에 정원 외, 또는 임시로 맡기는 관직 앞에 붙인 명칭)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1365년(고려 공민왕 14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동지밀직(同知密直, 왕명 출납 관장하며 군사기밀 담당)겸 대사헌(大司憲, 오늘날의 검찰청장), 전라도 관찰사(觀察使, 오늘날의 도지사), 삼사좌사(三司左事,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삼사의 벼슬), 검교우의정 등 다양한 벼슬을 지낸 인물로 그의 청명함을 그린 일화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공민왕이 승하한 후 놀기만 좋아하고 절제가 없었던 어린 우왕이 즉위했는데 어느날 우왕이 신하들과 놀이를 갔다가 갑자기 내린 소나기에 물이 불어났다. 수행하던 신하들이 우왕좌왕하며 왕을 보좌하지 못했는데 노승이 왕을 업고 냇물을 건너면서 절제있는 행동을 해줄 것을 간청했다고 한다. 이후 왕이 말을 타고 사냥하다가 노숭의 집 앞까지 오게 됐는데 노숭의 집임을 알게 되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집을 빠져 나왔다고 한다.

경기좌도관찰사가 되었을 때도 경기지역 내 땅에 고관들의 땅이 많았는데 세금을 공평하게 매기고 청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예순 살이 넘은 나이에도 아침저녁으로 노모의 진짓상을 직접 수발할만큼 효성이 지극했다.

그가 사망하자 조정에서는 3일간 조례를 폐지하고 공정하게 다스린다는 경평(敬平)이란 시호(생존에 공덕을 기려 임금이 내린 이름)를 하사했다.

현재는 노숭의 18대 후손인 노길식(63)씨가 묘소 옆에 집을 짓고 살면서 묘를 관리하고 있다. 시호를 받으면서 하사 받은 땅에 묘소를 마련하고 600년 가까이 후손들이 묘를 지키고 있다.

노숭의 묘에서 내려보면 천왕동이 한눈에 펼쳐진다. 대나무와 같은 굳은 절개로 백성을 위하던 노숭의 마음이 천왕동을 감싸 안고 있다.

❚참고서적
*구로구지 (구로구 발행, 1997년)
*향토사수탄(김정진 편저, 1995년)
❚도움말
*노길식(63, 천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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