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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사이로] 여름 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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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사이로] 여름 안부
  • 성태숙 시민기자( (구로파랑새나눔터 지역아동센터장) )
  • 승인 2023.09.01 18: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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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여름의 강렬함을 빗대어 '서프리카'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얼마나 덥고 힘든지 서울의 여름이 아프리카의 더위에 못지않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 듯하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정말 깜짝 놀랐다. 서울의 여름이 덥고 또 점점 더 더워지고 있지만, 그런 말이 나올 정도로 그렇게 더운 것인가 새삼 놀라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말이 아니라도 이제는 한 해, 한 해 여름을 맞이하기가 점점 더 겁이 나기도 한다.

최근까지 실내 냉방기 아래를 벗어나가기가 정말 내키지 않았다. 바깥을 다니노라면 더운 열기에 온 몸이 고스란히 익어 내려가는 것만 같고, 신발창을 뚫고 치솟는 아스팔트 열기까지 가세하면 걸음마다 숨이 막혀오는 것 같았다. 여름이 펄펄 끓고 있다가 누군가 지나가는 사람만 보면 잡아채서 함께 끓여댈 것만 같았다. 

문제는 그런 날씨에도 아이들은 놀아야 한다는 것이다. 노는 것은 괜찮은데 꼭 물놀이를 가고 싶단다. 특히 놀이터 안에 작은 물놀이장을 만들어놓은 '솔길놀이터'나 바닥분수가 나오는 '아트밸리'에 가야겠다고 성화를 부린다. 

그래도 조금 머리가 굵은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은 거기까지 갈 고생을 생각하며 망설이는 눈치지만, 세상을 향한 열정밖에 없는 1학년들은 무슨 수가 있더라도 놀이터를 가야겠다고 난리를 부리고 애원을 해온다. 그러니 아이들을 데려갈 어른들이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 

파랑새에서 솔길놀이터를 가자면 오르막길에 올라 119안전센터로 건너가서 한참을 더 걸어 내려가야 한다. 결국 나이도 들고 길도 밝은 내가 첫 타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겨우 마음을 내어 간 날 그만 식겁을 하고 말았다. 아쿠아슈즈를 신지 않으면 물놀이장에 입장할 수 없다는 새로운 규정이 생겼다는 청청벽력 같은 소리를 듣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금방 시원한 물놀이를 할 수 있으니 그만해도 어디냐 싶어 모두 참고 견디며 걸어왔는데,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놀이장을 멀뚱히 보면서도 신발이 없어 들어갈 수가 없다니 모두가 울상이 되었다. 

안전요원 말이 시장에 가면 신발을 파는 곳이 있다고 하니 그 소리를 옆에서 듣고 뭘 망설이냐고, 기다릴 테니 당장 사가지고 오란다. 그 분부가 참으로 마땅치는 않았으나 여기서 아이들을 설득해 다시 파랑새로 돌아가는 일이 어쩌면 이 더위를 무릅 쓰고 시장을 다녀오는 일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생각에 함께 온 실습생에게 잠시 아이들을 맡기고 시장을 다녀왔다. 그리고 이제 신발까지 장만을 했으니 물놀이장은 아예 일삼아 다니게 되었다. 

그 날 함께 물놀이장을 갔었던 실습생은 그 후에도 서너 번 더 아이들을 데려간 후 '자신은 이제 놀이터는 더 못 간다'고 조용히 선포를 해왔다. 

물놀이 좋아하는 1학년들 때문에 남의 집 다 큰 귀한 자식을 잡을 수는 없다 싶어 그만해도 감사하다고 그러시라 하였다. 그리고도 물놀이는 한참을 더 계속되었다. 

태풍이 불고 거센 빗줄기가 한바탕 몰아치고 난 후 여름은 한풀 기세가 꺾인 듯하다. 그래도 여름은 뭐가 아쉬운지 쉽사리 물러가질 않고 서성거리는 모습이다. 

지난 주말 영일초등학교 인근 하늘도서관을 찾았을 때만 해도 적잖이 더워서 실내 그림책 전용 열람실을 찾았다 역시 더위를 피해 오신 할머니 한 분을 뵙게 되었다. "아이고 아줌마도 더워서 아이들 데리고 오셨구나," 먼저 인사를 건네주신다. "그런데 애들 엄마가 아니고 할머니신가..." 기색을 살피며 뒤이어 말씀하신다. 

그렇게 더웠는데도 머리에는 하얀 서리가 내리고 있었던 줄을 나만 미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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