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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구로동주민들 바람이 탄생시킨 '연화정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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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구로동주민들 바람이 탄생시킨 '연화정토사'
  • 윤용훈 기자
  • 승인 2023.06.09 16: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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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전 구로동 주민 40여명
씨앗기금 모아 1억으로 추진
1988년 4월24일 송광사를 찾은 연화회 회원들.
1988년 4월24일 송광사를 찾은 연화회 회원들.

 

40년이 흘러온 지역의 친목모임이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청년·중년이던 회원들은 열정을 가지고 지역에 번듯한 사찰 하나를 창건하자는 목표를 이루는 세월사이에 대부분 백발의 노인으로 변했고, 작고하거나 이사를 가서 현재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형제자매 이상의 친밀한 이웃으로 남아 노년을 보내고 있다.

주인공은 '불교 연화회'(이하 연화회)다. 80년대 초 당시 구로동 불교신자들이 동네에 사찰이 없는 상황에서 민족의 정신적 지주이자 호국불교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지역에 사찰을 창건하여 뉘우치고 깨달아서 참된 나 자신과 종교를 되찾고 나아가 회원간의 두터운 우정과 변함없는 믿음속에 불교발전에 이바지해보자는 취지로 1983년 2월 창립됐다. 처음에는 10명미만으로 시작해 40여명으로 늘었고 현재는 10명만이 남아 있다고 한다.

연화회 창립을 주도하고 10여년 이상을 회장으로 활동해 왔던 이규종 어르신(83, 구로4동)은 연화회 산 증인으로서 40년간의 연화회 활동에 대해 소상하게 설명을 하면서 구로4동 두산아파트 단지안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연화정토사'가 세워지게 된 배경을 소개했다.

80년대 초 당시 구로3동 시영아파트(현 삼성래미안 아파트)자리에는 태능 봉선사 소속의 포교당이 있었는데 스님이 이사가면서 이 포교당도 없어져 실제 구로3,4동에는 사찰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1991년에 개관한 구로종합사회복지관을 위탁받은 대한불교조계종사회복지재단 관장(스님)의 도움으로 이곳 식당 등에서 연화회 회원들이 모여 종교생활 및 급식 등의 봉사활동을 펼쳤다고 한다. 

특히 연화회는 동네에 사찰을 건립하기 위해 창립 당시부터 회비 및 월세 등으로 기금을 모아가고 있었다고. 처음 회비 3천원으로는 기금이 모아지지 않아 적립된 회비를 가지고 전세를 얻고 다시 월세를 놓아가면서 기금을 보탰다고 한다. 

그렇게 모은 기금이 당시 약 1억원 가까이 달했다고. 마침 복지관 관장의 주선으로 설악산 봉정암 스승이던 현 연화정토사 주지스님인 성천스님을 소개받게 돼 결국 연화회 사찰건립기금과 은행 융자금 여기에 성천스님의 자체 자금을 합쳐서 현재 구로4동 두산아파트내에 있는 관리소 건물 2층을 99년 매입해 공동명의로 연화정토사라는 사찰을 개원하게 됐다는 것이다. 

지역주민들과 함께하며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가족처럼 보살피고 돕는 사찰로 자리잡은 연화정토사는 지금은 지분을 합의 정리해 독립 개별사찰이 아닌 조계종 종단에 귀속된 사찰이라고 한다. 연화회가 창립 17년만에 기금을 모아 지금의 연화정토사 창건의 씨앗 겸 산파역할을 한 셈이다. 연화회 주민들은 사찰 건립에 기여한 것 외에 복지관 식당에서 수년간 급식 봉사를 담당해 왔다. 

연화회 신원연 회장(75, 구로3동)은 "80∼90년대 당시 3040대 중심의 40여명 회원이 젊은 열정을 가지고 복지관 식당의 급식봉사를 비롯해 회원가족들이 먹을 푸짐한 음식을 직접 장만해 매년 두차례 정도 버스 2대를 빌려 부부동반으로 전국의 사찰을 순례하는 등 왕성한 친목활동을 벌여 왔다"고 회고하고 "아이들 키우고, 생업에 종사하던 시기라 회원 모두 어렵고 힘든 생활을 했지만 그래도 그때가 사람 사는 정과 맛이 있었다"고 했다. 

윤정자 총무(70, 구로3동)는 "30대 초반에 회원으로 가입해 30년 이상 활동하면서 그동안 회원들과 봉사하며 재밌게 허물없이 지냈지만 지금은 회원들이 탈퇴, 이사. 작고한 회원들이 많아지면서 회원 10명만 남아 40년동안 지켜온 매월 10일 정기모임에서 점심식사를 함께 하며 가족과 같이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했다.

이규종 고문은 "불교 회원들이 합심하여 지역에 번듯한 사찰 창건에 기여했다는 보람과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현재 연화회가 사찰에 대한 지분이 없지만 미련이나 후회는 없고 그것으로 족하다"면서 "만나면 헤어지고, 영원한 것이 없이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며 "40대 초반 연화회를 창립하여 사찰 창건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리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옛 회원 절반 정도가 소천하고, 남아 있는 7080대 노인으로 변한 회원들과 월 1회 정기적으로 만나 정겨웠던 옛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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