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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3] 한여름 밤 구로동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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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이야기 3] 한여름 밤 구로동의 꿈
  • 성태숙 시민기자
  • 승인 2013.08.23 1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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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은 놀이터이고 사랑방이며 캠핑장이었다"

거짓말같이 계절이 바뀌고 있다. 어쩜 절대 물러설 것 같지 않던 더위가 엉거주춤 자취를 감추고 있다. 아이들도 방학을 끝내고 학교로 돌아가니 이제 지역아동센터 교사들은 한시름 놓게 생겼다. 더위도 가고 아이들도 학교로 돌아가고 올 해 여름은 이제 안녕이다.

일기예보에서 예고되었던 수도권 지역의 더위를 씻어줄 비는 밤이 다가도록 오지 않았다. 그래도 바람은 제법 서늘한 기운을 품고 있어 더 이상 끈적거리지 않는다. 신기하게도 오늘밤에는 찌르레미인지 무언지 모를 쓸쓸한 벌레 울음소리가 들린다. 한 여름을 맹렬하니 울어대던 매미 소리는 사라지고 가을밤의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여름을 난 이야기는 아직 한참 더 갈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 캠핑을 가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모양이다. 캠핑용품 시장이 급성장을 이룰 만큼 올해는 더 성황이라고 한다. 갑자기 몇 해 전 모 복지재단에서 캠핑카를 이용한 캠프를 실시하였던 생각도 난다. 그 때만 해도 캠프와 캠핑카라는 말에 신청하는 내가 더 흥분을 할 정도로 많이 생소했던 일이다.

어릴 적 국수 장사를 하시던 아버지는 여름휴가가 따로 없었다. 더욱이 피서 같은 호사는 생각도 못했다. 5학년 무렵인가 친구네가 부산으로 피서를 갔다 고생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속으로 한없이 부럽고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구로동에 살면서 여름을 어디로 피해 갈 생각도 못했거니와, 여름을 그렇게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구로동의 여름 낭만이 통 없던 것은 아니다. 그 때는 지금처럼 거리의 불빛이 그리 휘황찬란하지 않던 시절이라 9시 전후로는 거리에도 제법 어둠이 깔리곤 했다. 적당히 가려줄 만한 어둠 속에서 우리 가족은 가게 앞 그야말로 길거리 한 귀퉁이에 돗자리를 깔았다. 지금처럼 은박지로 제대로 된 돗자리도 아니었고, 그나마 그것도 없으면 신문을 갖다 깔기도 하였다. 더위를 피해 온 가족이 그 자리에 누워 심지어 깜박 잠이 드는 적도 있었다. 그러면 아직은 공해가 심하지 않던 시절이라 한 밤이 되면 제법 선선한 기운을 느껴 자던 사람들은 부르르 몸을 떨며 일어나 잠에 취해 집 안으로 들어가 마저 잠을 잤다.

그 때는 12시만 되면 통행금지라고 해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밖을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던 통금이 있던 시절이다. 밤 10시부터 거리는 본격적으로 한산해지기 시작해서 11시가 넘으면 인적을 찾기 거의 힘들어지곤 하였다. 모두가 어디론가 들어갈 자리를 찾아 거리는 갑자기 텅 빈 쓸쓸한 곳이 되고 말았으므로, 행여 그 날 크게 잘못을 해서 부모님께 집을 나가라는 꾸중이라도 들을 참이면 아이들은 소스라치게 놀라곤 하였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거리로 내쫓기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공포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세월에 네 벽이 둘러쳐진 집 안에서 문단속을 할 수 있는 것은 든든한 기분을 안겨주는 일이기도 하였다.

그런 소박한 행복을 되새기다 보니 집 앞 거리에서 돗자리를 펼쳐놓고 누워 수박 몇 조각을 먹고 잠이 들었던 보잘 것 없던 일들이 더없는 캠핑으로 여겨진다. 지금처럼 동네가 아닌 내 집으로 공간이 명확히 제한되지 않았던 시절, 골목은 우리 어린애들의 놀이터였고 어른들의 사랑방이었으며, 거리는 우리들의 캠핑장이고 응접실이기도 했다.

발터 벤야민이 도시의 산책자에서 말했던 것처럼 가난한 시골에서 올라온 우리 아버지의 집보다 거리는 더 시원하고 볼 것이 많았으며, 우리의 이웃들과 정을 주고받을 수 있던 멋진 장소였던 것이다.

여름이 가는 길로 캠핑을 떠났던 사람들이 돌아오고 또 좀 있으면 가을을 찾아 다시 캠핑을 떠날 것이다. 우리는 그 아름다웠던 것들을 모두 어디로 추방을 해놓고 이리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그것들을 추적하러 다니는가? 나는 어릴 적 거리에서 한 여름밤의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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